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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이야기

제목

도(道) 그리고 돈(金)

작성자
오병철
작성일
2011.11.18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303
내용

검도 산책1

 

도(道) 그리고 돈(金)

 

<들어가기>

1954년 늦봄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이다. 남들은 대학입시준비에 목을 걸던 시절에 엉뚱하게도 세상 걱정에 힘들어하고 있던 때였다.

1950년에 6.25가 터지고 1953년도에 휴전이 된 직후라 가난과 정치적 혼란으로 많은 국민들이 극심한 굶주림과 질병으로 매우 고통받고 있던 때였다. 이런 비참한 현실에 가슴 아파하면서 우국제세(?)의 길을 찾으려고 나름대로 방황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책 속에서도 또는 종교 속에서도 해답의 길을 못 찾고 고민하다가 그 사이 약해진 심신을 가다듬는 처방으로 우연히 검도를 만나게 되었다.

각설하고,

 

<이제>

그리운 추억의 산책길에서 옛 추억 하나 떠올려본다.

그해(54년) 가을이던가 반세기가 훌쩍 넘은 아스라한 지난 기억이지만

검도를 생각할 때는 가끔 떠오르는 한 컷 그림이 있다.

희미한 것은 대충 좀 채색을 하기로 하고.

 

<첫 마당>

그날이 늦가을이었지 아마, 티를 입기에는 조금 서늘했던 것 같다.

옛 대구 시청 옆에 예스럽게 지어져 있던 무덕관에는 그날따라 당시 대구의 내노라 하는 검객들이 하나둘 모여 들었다. 오후에 있던 수련시간이 아니고 아침나절이었는데도 말이다.

모두들 호구를 챙기고 죽도와 도복을 챙기는가 하면 사범님들은 진검도 챙기고 집단도 챙기지 않았나 생각된다.

모두들 평소와 달리 단정하게 정장들을 하고 조금은 긴장되고 조금은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검도에 입문하기 얼마 되지 않은데다 학생이라고는 나까지 셋뿐이어서 사범님들의 호구를 챙긴다든지 이런저런 잡심부름으로 더욱 정신이 없었다.

그날은 미(美)제8군에서 초청을 받아 검도시범을 보여 주려고 가는 날이었다.

당시 검도회(당시는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분리되기 전이라 경북검도회)에서는 더없는 큰 행사로 생각하고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그 당시라면 전쟁 직후기도 했지만 미군이라면 막강한 힘과 부의 상징으로 쉽게 가까이 가기 어려운 권위의 영역이기도 해서 그들의 초청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럽기까지 했을 것이다. 거기에 부자나라 선진국인 미국의 군인들에게 우리의 이 귀한 검도문화라도 자랑스레 보여주고 홍보할 수 있다니 긍지와 사명감에 마음 설레지 않을 검도인이 있었으랴.

대구에서 검도를 하던 사범님들과 선배 검우들이 한분 한분 모여 들었다.

거기에는 정태민 사범님을 비롯 남정보, 배성도, 이순영, 강용덕, 서갑득, 윤병일, 최병철, 고광찬 등 쟁쟁한 검객들과 학생으로 남승희, 김재일(?) 그리고 나였다.(기억이 좀 불확실하다)

지금은 이 세상을 뜨거나 고령으로 우리 검도의 신화로 남아 있는 그리운 분들이다.

자동차에 호구와 죽도 등 검도 장비를 싣고 준비가 다 되자 약속 시간에 늦을세라 서둘러 출발했다.

부대는 그리 멀지 않은 시내에 있어 금방 8군 정문에 도착했다. 간단한 검문을 마치고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행사장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둘째 마당>

우리가 안내된 곳은 군용 콘셋 건물로 내부는 장병들의 휴게실인 것 같았다. 전면에 10평에도 못미칠 조그만 무대가 있고 홀에는 15개 정도의 원탁에 의자들이 곁들여 놓여 있었다. 좌석이 기껏 30 여석, 그것도 원형 테이블이라 간단한 차라도 마시면서 쉬는 공간인 듯해서 공연을 하거나 관람을 할 장소가 아닌 듯 했다. 공연 시간이 30분 정도 남아 있어서 이곳에서 대기했다가 다른 체육관이나 가설 무대 같은 데로 옮아가는 것이겠지 하고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기대일 뿐, 정시가 되자 그 담당자는 거기서 공연을 시작하라고 했다.

그것도 관객이라는 것이 4-5명의 군인들이 끼리끼리 테이블에 둘러 앉아 희희덕거리며 환담을 하거나 껌을 씹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히끗히끗 무대쪽으로 눈길을 주기도 했다.

예컨데 요즈음 보통 커피숍 한쪽 구석에서 검도 시범을 보이는 것과 같았다.

온 검도회가 며칠씩 준비를 하고 한국 검도의 진수를 보여주려고 마음먹고 온 터라 우리 그 근엄한(?) 검도 사범님들은 난감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싫은 기색 하나 보이지 않으시고들 그것도 황공하게들(?) 열심히 그 난관을 극복해 나갔다. 그것도 검도 정신이 아니던가?

검도의 본(本) 하나 제대로 하기 어려운 좁은 무대 공간에서 호구를 입고 합동대련을 한다거니 집단베기를 한다거니 참 난감한 일이었다.

더구나 관객이라는 것이 많을 때는 서너 명 아니면 한두 명, 그것도 시범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환담을 하다가 어쩌다 한번씩 쳐다보거나 뒤로 앉은 사람은 고개를 돌려 보거나 하다간 나가거나 들어오거나 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쪽에 일주일 프로그램이 붙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 따라 공연이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은 와서 보기도 하고 지나가면서 훔쳐 보기도 하는 그런 장소 그런 행사인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검도팀의 기대와 준비와 각오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커다란 체육관에 수천 아니면 수백 명의 군인이 이 시범공연을 보기 위해서 모여 앉아 기다리고 있겠지. 아니면 옥외 가설 무대가 설치된 그런 무대 그런 큰 행사의 주인공이 되리란 기대에 가슴 부풀어 있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자칫하면 모욕적이라 생각되기까지라도 할 그 상황에서도 불평하나 하지 않고 더욱 진지하게 커다란 기압 소리를 울리며 미니 검도 시범을 다 연출한 우리 그 진지하던 사범님들! 검도 정신을 구현하며 무대에서 드디어 휘날레를 하고 인사를 할 때에는 홀에는 흑인 병사 한명이 그것도 무대를 등지고 머리를 팔로 고이고 졸고 있었다.

어떻든 우리들의 미군부대에서의 검도시범은 차질없이 성공적(?)으로 끝났었다.

우리끼리의 미니 쇼로.

 

<셋째 마당>

갖고 간 검도 장비들을 정리하여 차에 싣고 공연의 아쉬움을 접고 미8군부대를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뒤따라 나온 담당자가 수고했다는 인사와 더불어 한마디 덧붙이는 말.

“얼마입니까?(How much?)" 하는 것이었다.

우리 근엄한 사범님들은 그때까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면서 무슨 못들을 말이라도 들은 듯,

“아니요, 우리가 하는 검도는 돈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고 심신을 단련하고 인격을 수련하는 무도입니다. 바로 도(道)를 닦는 것입니다. 돈을 받고 파는 상품이 아닙니다.” 이런 취지의 말씀과 함께 손사래를 치면서 황공한 듯 ‘댕큐 댕큐’ 하면서 차에 올랐다.

그렇게 우리 차가 공연장을 떠나 부대를 나올 때 그 자리에는 얼만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뿌리치고 온 검도시범 값(?) 달러가 든 봉투를 든 채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고 서 있는 8군 담당자의 모습이 한참동안 남아 있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는 다들 기대에 어긋났던 행사에 대한 허탈감으로 아무도 입은 열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의 그 순수한 무상행위로 조금은 위안을 삼는 것 같았다. .

허긴 나중에 “그 돈 받아와서 술이라도 한잔들 할 걸...“ 하는 농반 진담반으로 하던 말을 들은 적도 있긴 하다.

우리의 그 해 ‘최대의 행사‘는 그렇게 끝났었다.

 

<그 뒤>

이 이야기는 그로부터 1주일 후의 일이다.

옛날의 도장(일제시대에 지어진)은 대개 절반은 검도, 나머지 절반은 유도 연습장이었다.

대구의 무덕관도 바닥이 반반 나뉘어 검도부와 유도부가 각각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도부도 그 무렵 똑같이 미 8군으로부터 시범 초청을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시범을 하고 왔었다. 그리고 시범이 끝나고 똑같이 얼마냐(How much?)는 물음에 우리 검도팀과는 달리 얼만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많은 액수를 불렀다고 한다.

부른 대로 다 받아왔는지 모르겠으나 어떻든 달러를 두둑히 받아와서 그 어려운 시절에 푸짐한 잔치를 벌였다고 했다.

그리고 유도부는 그 후로도 몇 차례 초청을 받아 시범을 보이고 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배 아파한(?) 우리 검도팀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었다.

“ 미국 사람들은 돈으로 온 세상 가치를 측정한다는군. 검도 시범은 돈을 안 받아 왔으니 그저 공짜로 해도 될 만큼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알겠군. 유도 시범은 비싼 만큼 가치가 높은 것으로 알아 또다시 초청했을 것이겠지. 서양 사람들은 ‘도(道)‘가 무엇인지 ’정신적 가치‘가 무엇인지 모른다지. 그랬어도 우리도 값을 많이 불러 검도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좋을 뻔 했지. 그래야 또 초청도 받고 해서 검도를 더 홍보할 기회도 잡고 했을 텐데...”

 

<그러면>

그나마 우리의 긍지를 지켜주던 그 ‘도(道)’란 무엇이던가?

아차 ‘도(道)’란 보통 ‘길‘이란 뜻인데 길잡이도 없이 내가 길을 잘못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각설하고 상식에서 조금 찾아보자.

공자님은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고 했단다.-논어-

예수님도 ‘내가 길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다지.-성경-

이렇게 되면 ‘도(道)’란 사람이 찾는 궁극적 진리라 할까 아니면 사람답게 살아가는 삶의 길을 이야기한다 하겠다. 공자님이나 예수님의 말씀들 속에는 ‘인(仁)’이나 ‘사랑’으로 대표되는 구체적인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는 실천적인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효(孝)나 예(禮)를 이야기하거나 소외된 사람 심지어 원수에게까지 사랑으로 감싸안기를 바라듯 현실적인 삶 속에서의 같이 잘 살아가는 ‘길’, 그것이 바로 ‘도(道)’로 표현되고 이 세상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유교의 철학서라 할 중용(中庸)의 첫 구절을 옮겨 보자.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천명이 곧 성(性)이라 하고 그 성에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이 도를 닦는 것이 교(敎)라 한다)

여기에서 하늘이랄까 자연이랄까 원천적으로 주어진 본 모습을 들어내 그대로 따라 온전히 이루어가는 것이 곧 도라 한다 라는 표현인 것 같다.

불가(佛家)에 ’선(禪)’을 통해서 견성오도(見性悟道)한다는 것도 이런 맥락과 통하겠지.

이쯤 되면 ‘도’는 좀 일반화되고 더 추상화되면서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인식되어 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노자(老子)에 이르면 ‘도(道)라 하면 도가 아니라‘느니 불가에서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다는 깨달음‘에까지 이르게 되면 형이상학적으로 더 추상화되어 ’도‘란 개념이 온 우주로 확산되면서 구름 위로 올라가 버리고 자칫 우리의 시야에서 찾기가 어렵게 된다.

검도에서는?

일본에서 검도인의 성지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노마도장(野間道場)의 창시자인 노마 세이지(野間淸治)의 아들로 서른 약관에 요절한 불세출의 검도천재였다는 노마 히사시(野間恒)의 저서인 ‘검도독본’에서

‘도(길)는 어디까지 가도 한계가 없다. 정말 도(道)를 체득해 가는 길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이 수행했더라도 이만하면 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거나 ‘검도에서 예의나 태도를 중시하는 것도 요컨대 ’도(道)’를 구하는 진지한 마음인 것이다‘라는 등 ’도(道)‘는 더욱 관념화되어 간다.

그런 속에 군국의 이데올로기화 되거나 하수인이 되면서 ‘완전한 인격’이라거나 ‘국가 국민을 위하여’, 나아가 ‘세계 평화 인류 공영’이라는 허상을 내면화시켜서 자기최면에 빠지기도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현재적 삶 속에서의 사랑과 정의는 잘 반영되지 않는다.

아, 나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이러다간 한이 없겠네. 미로에 빠진 모양이다. 이것도 하나의 ‘길(道)’이려니와 어서 출구를 찾아 나가야겠다.

중국의 작가 루쉰(魯迅)의 글에 나오는 ‘길이란 원래 있던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가고 또 가고 해서 생긴 것이 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도(道)’란 원래 살아가는 길이며 뭐 따로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친 듯 대나무 작대기칼(?) 휘두르면서 모양도 갖추고 뛰면서 기분 내다 보면 때로는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진지한 기분, 순간순간 맛보는 짜릿한 쾌감, 이것도 인생이라고 칼춤 추느니 몸도 가꾸고 친구도 사귀고 하다보면 아 거기에 칼길이 생기고 세월에 익다 보면 쉽게 들여다보지 못하던 미지의 문이 열리면서 현실의 갈등이나 괴로움도 가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절대고독도 허물어지면서 비상할 수 있다니 아 이 얼마나 귀한지고. 그래서 우리는 검도가 좋아라.

 

<그리고>

이젠 ‘돈(金)’ 이야기가 남았구나.

그런데 돈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다. 아니 말할 필요가 없다.

어느 누구도 나보다는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돈에 대해서는 독자에게 부탁하자.

돈 때문에 받은 서러움, 그 한과 원한에서부터 기쁨과 편익 그리고 호기와 지배에 이르기까지 그저 나름대로 멋대로 상상하고 ‘돌고 돈다’는 돈에 대해 한번 써 보시라. 내가 돈을 가지고 노는지 돈이 나를 가지고 노는지 까지. 그래서 이 글 매듭 부탁드리면서 살짝 빠져 나가야겠다. 안녕.

 

<독자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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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꼬리>

그래도 그때 미군부대에서 자존심 상한 달러 몇 푼 받아왔던들 그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그때 우리 어른들이 안받아오기 잘한 것 같다. 헛발질이라도 그런대로 호기 한번 부린 셈이니. 검도는 역시 참 대단한 ‘도(道)’가 아닌가.

나도 세월에 헛칼질(?)이라도 신나게 하다 보면 신기루라도 잡을 수 있가나. ^불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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